2009. 2. 18. 01:05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_2003년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의 포스터이다. 흠, 영화의 갈등구조와 다르나 상징적인 형상화 인가?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 중에 하나가 자전거다. 성장기에 자전거에 대한 추억 하나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듯 하다. 나에게도 나 보다 큰 자전거를 프레임 사이로 다리를 집어 넣어 열심히 타다 엎어져 무릅팍이 까인 추억과 무쇠 철차로 60kg짜리 쌀 몇 가마니를 뒤에 얹고 달리던 쌀집 점원의 굵은 종아리를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 TV 시리즈나 영화들은 주변의 독특한 직업을 소재로 해서 재미있게 구성된다. 형사, 변호사, 의사들은 기본 단골이지만, 전문 요리사, 플라워리스트, 게임제작자, 지휘자 등 직업의 세계를 매개로 새로운 세상을 보는 시각을 열어 준다. 지금까지는 자전거는 추억의 소품 정도로만 쓰인다. 그 만큼 자전거는 우리의 주변부의 겪가지 정도 즈음이다.

자전거 세상으로 들어와 자전거와 관련한 문화 컨텐츠를 뒤지다 추천 받은 에니메이션이 있어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이다. 아~ 대단한 에니메이션이다.

런닝타임 48분중에 30여분이 레이싱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이싱의 핵심은 스피드와 페이스 조절과 철저한 팀의 분업이다.  이 작품에서는 레이싱은 한 인간의 삶의 불안, 고독, 아픈 과거, 삶에 대한 치열한 의지가 복선으로 녹여져 있다. 그래서 레이싱의 긴장감 속에 공감의 정서가 감싸 안는다.

주인공 페페는 페이스 메이커다. 페이스 메이커란 상대팀의 체력을 고갈시키기 위해 경기 중 무자비한 스피드로 어택을 감행하여 팀의 에이스를 지원해 주는 역할이다. 페페는 지난 경기에서 자신의 욕심이 지나쳐 팀의 에이스까지 제쳐 해고의 위기에 처해 있다.

자신의 고향 스페인의 황량한 안달루시아를 거쳐가는 '벨타 아 에스파냐'의 구간에 참가 중이다. 그 시간 자신의 여인이었던 카르멘은 자신의 친형인 앙헬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군대를 간 사이는 카르멘은 형을 택했던 것이다.

달려라 페페(Venga PePe)라 쓰인 도로의 응원 구호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달리고 싶을 뿐이고 더 멀리 나가고 싶을 뿐이다. 페이스 메이커로서 임무를 다하기 위해 무모한 어택을 감행한다. 하지만 다른 팀 어느 누구도 그를 따라 가지 않는다. 페페만이 모래바람이 몰아쳐 오는 사막의 메마른 도로를 외롭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팀의 에이스는 불의 사고로 중간에서 탈락하고 페페는 아무런 지원없이 달려 나갈 것을 지시 받는다. 하지만 페페는 이미 지쳤고 다른 팀들은 마지막 스퍼트를 가한다. 거리는 좁혀져 가고... 마지막 스퍼트에서 동시에 결승점을 통과한다. 사진 판독으로 페페는 승리자고 되고 기자들과 인터뷰때 자신을 지원해준 바오 맥주를 의도적으로 외친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 결혼식을 올린 형과 카르멘의 축하를 받지만 애써 무시한다. 그리고 카르멘과 헤어지고 혼자 울부짖었던 고향 안달루시아의 동산에 올라 스스로를 다짐한다. 동료가 있는 호텔로 돌아가 고향의 전통 음식인 절인 가지(나스)를 먹으면서 이 작품은 마무리 된다.

이 에니메이션은 섬세하다.  살벌하고 처절한 승부 세계 속에 한 레이서의 아픔과 고독과 승리에 대한 갈망이 과거의 추억과 현재 관계와 그리고 황량한 안달루시아의 배경 속에 그려져 있다. 복잡한 시공간의 구조가 레이싱속에 정서로 잘 정리되어 전달된다.

이 작품의 감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원령공주'의 작화 감독을 맡았던 코우사카 키타로이다. 그는 미야자키 하야호의 애제자이기도 한데, 코우사카 감독은 원작을 보고 감동을 받고 미야자키 감독에게 에니메이션 제작을 요청했으나, 레이싱의 전문성으로 감독 맡을 사람이 없자, 자신이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그의 첫 감독 입봉 작품이 되었다.  그는 아마추어 레이싱 대회에서 6회 연속 우승을 하기도 한 뛰어난 레이스이기도 했다.

4년후, 나스 슈트케이스의 철새를 만들어 나스 시리즈를 이어간다.

자전거와 관련한 문화 찾기는 지속되겠지만, '나스,안달루시아의 여름'의 감동은 쉬이 지워지지 않을 듯 하다. 정말  달리고 싶다. 얼른 봄이 왔으면 한다. 그리고 5일 담근 가지 절임도 맛보고 싶다.  과연 어떤 맛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