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4. 13:56

세모 속초라이딩4_2일차(한계리-백담사입구-미시령-속초,12/31)

설악산에는 남겨둔 추억이 많다.
10년 전 산에 푹 빠졌을 때 설악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처음부터 설악산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산을 알수록 사랑이 깊어 졌던 곳이다. 서슬퍼런 날카로운 암벽들과 현기증이 날만큼 아름다운 비경들은 언제나 나를 설레이게 했다.
용아릉 암벽 사이 비박하면서 봤던 은하수, 공룡릉에서 탈진하여 지나가던 가이드에게 얻어 먹은 맨밥 도시락, 천화대에서 내려다본  화원같은 바위군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아 온다.
이젠 자전거로 이 산을 다시 찾아 왔다. 10년만에..

12선녀탕을 지나 백담사를 거쳐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46번 국도는 4차선 공사로 정신없어 보인다. 거기에 필요한 자재를 운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형트럭들이 비좁한 2차선 도로를 끊임없이 오간다. 그 때마다 위협을 느끼면서 계속 북진하였다.

마침내 미시령 표지가 보인다. 우리 여정의 마지막 하일라이트 미시령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속초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한계령을 넘어서 양양을 거쳐 속초로 가는 방법, 미시령을 넘어가는 방법, 진부령을 넘어가는 방법.. 한계령이 해발 988m로 젤루 높고 가파르다. 다음에 미시령, 진부령이다. 지난번 자전거샵에서 만난 분이 진부령으로 가 봐도 좋을 거라 했다.
난 대부분 한계령으로 다녔다. 한계령은 설악산의 중심부를 넘기때문에 산악인에게 가장 애용되는 길이다. 미시령의 경우는 단 한 번 지났는데, 그 땐 난 자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험한지, 어느 정도 난이도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미시령을 택한 이유는 속초라이딩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진부령과 갈림길에서 부터 4차선으로 넓어졌다. 이제부터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종엽과 나는 천천히 업힐하면서 올라갔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지만 긴장감으로 느낄 수가 없었다. 다리를 건너 미시령 옛길로 가는 이정표 아래 잠시 멈추어 섰다. 결정을 하기 위해서이다.
미시령 옛길은 설악산 능선까지 길이 나 있어 꽤나 긴 업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다운힐도 가파르고 길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길은 새로 뚫린 길인데 미시령이 터널이 있으니 정상까진 오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느길로 가야 할까 고민이다.
광교바이크의 안전님은 터널이 위험하니 옛길로 가라고 했다. 옛길로 들어서는 초입구에 커다른 제설차가 길을 통째로 막고 있다. 옆으로 우회해서 가도 되지만 지난 주 내린 폭설이 아직 치워지지 않은 듯 했다.
종엽의 자전거는 미니벨로인데 바퀴가 얇다. 로드용으로 고안된거라 스피드에 촛점이 맞춰져있다. 이번 라이딩을 위해서 결이 있는 타이어로 장착했지만 그냥 결이 조금 보일 정도로 미미하다. 주위에 다니는 라이더가 없어 물어 볼 수도 없다. 심지어 차들도 옛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터널을 통과하기로 결정했다.

업힐하는 동안 목이 말라 물을 꺼내는데 게토레이 병에 채워진 물은 꽁꽁 얼어 붙어 있다. 다행히 종엽의 파워레이드는 먹을만했다.  함께 들어온 얼음조각을 입속에서 녹히며 미시령을 향해 출발했다. 어느 정도 업힐일지 감이 안잡혔다. 일단 가 보는 게다.

경사도 그리 높지 않은 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다가 머지 않아 터널을 만났다. 아~ 생각보다 업힐 구간이 짧았다.
저 터널을 지나면 다운힐인데 업힐은 이게 끝이란 말인가.. 약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터널이 버티고 있다. 설악산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터널.. 꽤나 길 거라 생각되었다. 터널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후미등을 켜고 심호흡을 하고 미시령의 심장부 속으로 자전거를 넣었다.
터널 끝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디가 끝인지 감도 안온다. 터널안 차들의 굉음소리는 긴장을 극대화 시킨다. 차들에게 묻어온 건조한 눈조각들이 도로 바닥에 밀가루 처럼 이리저리 떠돈다.  터널안 부스터 효과가 났다.
내달렸다. 도로 하나를 완전히 점거하고 페달을 힘껏 밟았다. 속도가 점점 올라갔다. 35..36..38km/h 페달이 헛돈다. 스피드에 페달이 쫓아가지 못한 것이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앞기어를 최고단으로 올렸다. 39..40..뒷기어도 어느새 최고단으로 올라가 있었다. 42..43..46.5km/h. 미친듯이 스피드가 올라갔다. 살짝 두려웠다. 미시령을 통과 할 때까지 42km/h 이하로 내려오지 않았다.
저기 끝이 보인다. 터널끝 여명이 너무 반가웠다. 이젠 끝이다. 속도를 점차 줄이며 다운힐을 대비했다. 밝은 햇살이 내리쬔다. 설악산의 심장부를 통과한 것이다. 아~~ 너무 행복하다. 터널을 지나 갓길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종엽과 나는 우리의 라이딩을 즐겼다. 하늘이 너무 맑고 설악산 옆으로 우뚝선 울산바위와 저너머 속초시와 동해바다가 우리를 반기는 것 같았다.

다운힐은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았다. 제설작업은 잘되어 있었고 미끄럼 방지를 위한 일정하게 우둘투둘 하게 처리한 엠보싱 노면 덕에 안전하게 내려왔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은 우리도 잼난 볼거리인 보다. 지나면서 한마디씩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운힐의 추위는 대단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뼈 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는 정말이지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미시령 톨게이트 입구 휴게소에서 커피와 쌍화차를 마시며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4시 이제는 속초에 들어가서 내일 첫해를 맞이할 숙소를 찾아봐야 할 때다. 날은 점점 더 추워지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피로감이 몰려 온다.
백두대간의 준령을 넘어선 해안가 지역은 내륙보다 비교적 따뜻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혜택이 없는 듯하다. 해는 저물어 가고 날씨는 더 추워지고 우리가 느끼는 추위는 더 심해지고 있었다.

미시령에서 속초로 가는 길은 편하다. 약한 내리막에다 해봤자 평지다. 하지만 곳곳에 얼어붙은 빙판길이 복병이다. 조심스럽게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움이 사무쳐 온다. 서울을 떠난지 이제 겨우 이틀째인데, 너무 고생을 해서인지 차가운 바람과 함께 내 몸속으로 파고든다. 2008년은 나에게서 너무 힘든 해였다. 좋지 않은 기억들을 떨쳐 버리려 이 악조건속에서도 속초라이딩을 감행한 것인데 아러니컬하게도 애써 무심할려 했던 사람들과 기억들이 내 머리속을 맴돈다. 내일이면 떠 오르는 새해의 빛나는 태양아래 희망으로 바뀌어 지겠지..

몸상태가 무척 좋질 않다.  온몸이 욱씬욱씬 쑤시다 못해 아프다. 속초해수욕장 앞 모텔의 숙박료는 천정부지다. 싼 곳을 찾으려 돌아다니다  하나를 구해 짐을 풀자마자 옷도 벗지 않고 몸을 눕혔다. 종엽이에겐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너무 피곤했다. 7시 30분 즈음 종엽이랑 저녁을 먹을려고 모텔 주인의 추천으로 막 개장한 생선찜 전문 음식점에 찾아 들었다. 덕장에서 반즈음 건조한 명태찜은 정말 맛있었다. 거기다 큰 홍게 한마리를 서비스로 줬는데 너무 맛났다. 하지만 난 많이 먹질 못했다.

식사후 숙소에 와서 종엽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우리 라이딩 마감되고 2008년 저물어 가고 있었다.  

미시령을 통과한 직후 무척 즐거워하는 종엽..

눈을 머금은 장엄한 설악산.

설악산의 자태가 눈이 부시다.

울산반위의 웅장한 설경.

울산바위...

종엽과 기념샷 ^^

미시령 휴게소에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감상중인 종엽.

드디어 동해로 오다. 속초해수욕장..

속초해수욕장의 아름다운

바다앞에서 기념 촬용한 의젓한 종엽.

늘 반쯤 먹고 사진을 찍어 대는 나.. 이 홍게 다리 몇 개 실종 상태..

홍게 반찬.. 정말 맛남

반건조 명태찜.. 정말 쫄깃하게 맛난다.

미션을 끝낸 라이더의 여유~

홍게 껍질에 밥을 비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