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3. 17:04

세모 속초라이딩3_2일차(인제-원통-한계리,12/31)

아침부터 서둘렀다.어제 강원지방 방송에서는 오늘 인제 최저 기온이 영하 11도 최고 기온이 영하 5도였다. 발가락 양말 위에 등산양말을 껴 신고 핫팩을 세끼발가락 중심으로 양말 아래에다 붙이고 클릿화 위에다 하나 더 붙이고 그리고 산 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 걸레처럼 너덜너덜거리는  커버를 끼워 넣고 추위를 대비했다.

8시 30분 산 너머 늦게 오른 해를 맞으며 달렸다. 시작은 언제나 스피드가 나질 않는다. 평지처럼 보이는 구간에서도 시속 12km/h를 넘지 못한다. 어떤 곳은 오르막처럼 보이는데도 20km/h속도가 나기도 한다. 도깨비 같은 도로를 50분을 달려 아침식사가 되는 집으로 들어갔다. 라이딩기간 중 가장 지역적인 분위기가 나는 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콩비지 찌게와 청국장... 찬으로 나온 고추무침, 나막김치가 맛났다. 
그 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화장실인데 일단 퍼세식이다. 오래간만이다. 퍼세식은 자리를 잡으면 어쩔수없이
예각이 형성되는데, 그게 나에게 아주 효과만점이었다. 요즘 약간 변비 증세로 고생중인데 그 자세가 깊숙한 곳에까지 신호를 보내 무려 화장실에서 4번씩이나 신호를 받아 20분동안 장기전을 치뤘다. 그 동안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처리되면서 몸이 무척 가벼워졌다. 분명 미시령 업힐에서 도움이 되리라...

10시즈음에 재정비하고 출발하였다. 마침내 홍천군을 넘어 인제로 들어섰다. 인제읍으로 들어서기전 화양강과 소양강을 옆으로 두고 시원한 라이딩을 펼쳤다. 이제부터 속도전이다. 예정보다 무려 40km를 미달하였고 미시령고개를 적어도 하루 중 가장 따뜻한 2시에서 3시사이에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가장 안전하게 다운힐을 할 수 있다. 미친듯이 속력을 내었다.
같은 시간대 비슷한 날씨인데 기온은 사뭇 다르다. 소양강을 끼고 돌무렵 내 발가락과 손가락에 극심한 통증이 왔다. 누가 찔러도 이렇게 아프진 않을거다. 특히 왼쪽 세끼발가락은 다른 발가락도 같이 부어 좁은 클릿화에서 끼어 터질 것 같다. 오른쪽 세끼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도 쓰리다. 이너웨어 장갑은 너무 얇고 10년 이상된 고어텍스 겨울 장갑도 그 기능이 다 했나 보다. 이 장갑은 군데군데 실밥이 터졌고 손이 시려울 것을 준비해서 얇은 장갑을 준비해 갔는데 세 개의 장갑을 끼면 장갑을 벗을 때 안감이 같이 흘러 나와 다시 끼는데 시간도 오래 걸릴뿐 아니라 안감이 바로 펴지질 않아 손가락이 끼어 더 아프다.

소양강 지날 무렵 사진도 찍을겸 잠시 쉬었는데 제대로 걷질 못했다. 결국 휴게소로 들어가서 발을 녹이고 종엽이가 빌려 준 장갑으로 손 시려움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오래 쉬고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자리를 털고 곧 일어섰다.
이제는 발이 시렵더라고 더는 쉴 수 없다. 손이 시려우면 손을 번갈아 털어가며 발이 시려우면 비좁은 클릿화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가며 계속 나아갔다. 소양강을 지나 다운힐 지점을 지나 인제와 원통 한계리까지 이어지는 평지구간을 만났다. 그 때부터 우리는 거침없이 달렸다.

아직 오후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림자는 달리는 내 자전거 앞에 있다. 정확하게 우리는 동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북동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38선 휴게소를 지났으니 꽤나 북쪽으로 전진해 왔다. 독립직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 경계로 강제로 그으진 남북의 국경선이 지금까지 유효했다면 우리는 월북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경계선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속초를 포함한 강원 상당지역이 남한 국령이 되었다. 물론 그러면서 개성을 포함한 서부지역은 북한지역이 되었다. 이런 시대의 아픔이 내가 내 그림자를 보고 갈 수 있도록 해준다. 아이러니다.

 내 그림자를 보고 달리는 건 독특한 경험이다. 내가 앞지를 수 없는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나의 앞길을 터주고 있는 느낌이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자전거와 나는 합심일체가 되어 하나의 독립개체로 세상과 마주한다. 열려진 세상과 나 혼자서 마주 친다는 것 자체가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팀을 이루고, 둘이 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외롭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열려진다.  세상과 만나는 일을 두려워 하지 않고 맘을 열게 되는 것을 자전거 타면서 배우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나의 그림자가 나와 함께 해준다. 지금까지 달리면서 단 한명의 라이더도 만나지 못했다. 만난다는 것이 이상하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우리같이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인제와 원통을 시원하게 뚫은 44번 국도를 따라 산세부터가 범상치 않은 설악산 초입 한계 삼거리에 도착했다.
12시 40분.. 이젠 안심이다. 속초까지 36Km를 남겨두고 미시령까지는 15km 정도를 남겨 두었다.
쉼없이 달려 온 후유증으로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며  휴게소를 찾아 들었다. 목출모로도 가릴 수 없는 내 코는 라이딩이 시작하자 말자 콧물을 뿜어 내더니 이젠 멋있게 정리할 것을 포기하고 장갑낀 손으로 한쪽 콧구멍을 적당히 틀어막고 힘껏 킁킁 거리며 콧물을 번갈아 풀어낸다.

미시령을 남겨두고 마지막 휴게소다. 종엽과 나는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기 위해 젖은 양말을 갈아신고 이젠 질려버린 초코바와 양갱을 우적우적 씹으며 결의를 다진다. 이젠 피마저 초코렛 색깔일 듯 싶다. 한계리 휴계소를 배경을 기념 촬영을 하고 우리는 결전지로 향해나갔다. 

설악산을 끼고 들어가는 46번 국도는 편도 1차선이다.  통행하는 차들을 배려해 최대한 한 옆으로 붙을려고 하나 거기엔 치워진 눈과 결빙으로 쉽지 않다. 하는 수 없다. 그냥 가는 수 밖에.
설악산은 그 동안 내린 눈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듯 하다. 옆의 백담계곡은 꽁꽁 얼어 붙어 아주 썰매장으로 열어둔 곳도 있다. 세상이 온통 하얗다. 하얀 세상을 관통하기 위해서 우리는 천천히 심장부로 다가가고 있었다.

홍천-인제 44번 국도에서... 정말 추웠다. 날씨는 너무 맑다.

맛이 가고 있는 나..

가장 지역적인 집에서 아침식사.. 콩비지찌게와 청국장 너무 맛났다.

식당의 강아지.. 아주 사교적이고 매우 귀엽다.

화장실 옆 백구.. 강아지의 어미로 추정되는데 무쟈게 이쁘다. 난 이런 개들을 좋아라 한다.

식당에서 출발하기전..

인제의 험준한 산들...

한계리의 휴계소... 여기서 부터 본격적인 설악산 로드가 시작된다.

미시령을 향하는 길목.. 눈이 시리게 푸르다.

결전을 준비하고 있는 종엽.

갈수록 맛이 가는 나..